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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여행정보

한국의 베트남 왕족 이주 후손 경북 봉화 화산 이씨 (호치민 이발소 응안하 여행 정보)

by 응안하이발소 2025. 8. 14.

2025년 8월 또럼 베트남 서기장 방한 행사 중 국빈 만찬의 주제 및 식재료의 공급처로 주목 받은 경북 봉화는 고려시대 베트남 Ly씨 왕족이 나라의 멸망을 피해 고려로 이주하여 정착한 지역으로, 고려 조정은 이들에게 화산 이씨를 하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한베 국빈 만찬 봉화 특산물 제공

봉화군이 오랜 역사적 인연을 바탕으로 추진해 온 베트남 마케팅이 결실을 맺었다. 이재명 대통령 내외가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을 초청해 연 국빈만찬에 봉화산 농특산물이 주재료로 쓰였고, 재계 총수와 베트남 최고위 지도부가 이를 함께 맛봤다. 한 지방의 특산물이 세계 외교 무대 중심에 오른 순간이었다.

이번 성과는 단순한 식재료 제공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봉화군과 베트남의 인연은 무려 800여 년 전 고려로 망명한 베트남 왕자 이용상에서 시작됐다. 그 후손인 화산 이씨는 봉화 땅에 뿌리내렸고, 충효당 등 유적은 양국 우정을 상징하는 살아 있는 역사로 남았다.

봉화군이 2020년부터 추진 중인 ‘K-베트남 밸리’ 조성사업은 이러한 역사적 서사를 문화·관광·경제 교류로 확장시키려는 전략적 시도다. 2029년까지 120억원을 투입해 테마마을, 관광상품, 국제교류 거점을 만드는 이 사업은 이번 국빈만찬을 계기로 한층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만찬 메뉴에 오른 ‘봉화산 허브 해산물 샐러드’, ‘봉화 된장소스 제철 민어구이’, ‘봉화 한우 떡갈비’ 등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역사와 문화를 담은 메시지였다. 한국의 쌈과 베트남의 짜조, 된장과 느억맘 같은 발효문화의 공통점을 살려 두 나라의 유사성과 교류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대통령실이 봉화 특산물을 선택한 이유도 베트남 왕자의 후손이 봉화에 정착한 역사에서 비롯됐다.

박현국 봉화군수는 베트남 최고 지도부와 직접 만나 K-베트남 밸리의 비전과 양국 문화교류 계획을 설명했고, 베트남 측은 깊은 감사와 협력 의지를 표했다.

경상 매일 신문

 

베트남 왕자의 고려 망명

800년 이어진 봉화와 베트남의 인연(출처:영남일보)

경북 봉화군과 베트남의 인연은 무려 8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베트남 최초의 통일왕조이자 최장기 집권 왕조인 '리(Ly)' 왕조의 제6대 황제 영종의 7남으로 태어난 이용상(李龍祥·1174~?)은 베트남에서 '리롱떵(Lý Long Tường)'으로 불렸으며, 훗날 봉화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됩니다.

 
 

1210년, 조카 혜종이 제8대 황제로 즉위한 뒤 외척이자 권신이었던 진수도(陳守度)가 국정을 장악하며 왕조의 운명은 급격히 기울게 됩니다. 진수도는 자신의 조카와 황실 공주를 결혼시킨 뒤 왕위를 찬탈했고, 1226년 혜종의 장례식에서 왕족들을 집단 도륙하는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씨 가문의 후손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용상은 숙청을 피해 가족과 부하들을 이끌고 남송과 대만, 금나라, 몽골 등을 거쳐 황해도 옹진군 화산포에 도착하게 됩니다. 베트남 역사상 최초의 '보트피플'로 기록된 그는 고려 조정의 환영 속에 정착했고, 고려 왕실로부터 '화산'이라는 성씨를 하사받게 됩니다. 그 후손들은 조선 사회에 깊이 뿌리내렸습니다.

봉화 이장발 충효당(문화재자료 제 455호)

리 왕조 건국자 이공온의 20세손이자 이용상의 13세손인 이장발(1574~1592)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19세의 나이로 문경새재 전투에 참전해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문경새재 전투는 왜군의 북진을 저지하기 위한 전략 요충지 방어전으로, 격전 끝에 많은 조선군이 희생됐다. 그는 전사 후 공조참의 직위가 내려졌으며, 1750년경, 후손과 유림들이 그의 충절과 효심을 기리기 위해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에 충효당(문화재자료 제466호)을 건립했습니다.

 

이장발은 베트남 왕자의 후손이자 조선의 젊은 무장으로, 한국과 베트남의 역사적 인연을 상징하는 대표 인물입니다. 그의 짧지만 굳센 생애는 봉화 화산 이씨 집성촌의 정체성을 형성했고, 후손과 지역 유림은 지금도 제향과 보존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봉화 'K-베트남 밸리' 조성 사업

 

현재 봉화군은 이장발과 화산 이씨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K-베트남 밸리' 조성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곳에서는 베트남 문화와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양국 교류의 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며, 과거 망명 왕자의 발자취는 오늘날 문화·외교 자산으로 확장되며, 봉화를 새로운 국제 교류의 중심지로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봉화와 베트남의 인연은 단순한 국제 우호를 넘어 피와 역사가 얽힌 서사입니다. 13세기 폭정과 숙청을 피해 바다를 건넌 한 왕자의 여정은 21세기까지 이어져, 지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양국 간 교류를 잇는 다리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충효당과 화산 이씨의 전통은 한국과 베트남의 우정을 상징하는 살아 있는 역사로 남아 있습니다.

베트남 왕손 31세손 이창근 주한베트남관광청 대사

 

이 대사(리 쓰엉 깐, Ly Xoung Can)는 베트남에서 유일한 ‘이중국적’ 소유자입니다. 그는 ‘화산 이씨(花山 李氏)’다. 베트남에서 유래한 한국의 성씨로, 13세기 외가의 박해를 피해 한국(고려)으로 망명한 베트남 '리(Ly) 왕조' 이용상(李龍祥) 왕자의 26세손입다.

이 대사는 1992년 한국과 베트남이 재 수교가 되면서 마치 ‘기적처럼’ 베트남으로 돌아가 국적을 회복했습니다.

그는 2017년 11월 24일 주한베트남 관광대사로 임명되었습니다. ‘화산 이씨’의 뿌리와 그의 관광대사 임명과는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그는 당시 “이용상 할아버지의 26손인 제가 ‘관광대사’가 된 자체가 감격적”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2024년 7월 1일 베트남 총리 한국방문 중 여행포럼에서 3번째 관광대사 재 임명 받았습니다.

2024년 1월 17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 그랜드프라자 29층에서는 이용상 왕자의 영화추진위가 출범했습니다. 이대사의 평생 숙원이 '이용상 왕자' 영화이니다. 베트남 문화부 장관도 관심을 갖고 있고, 총리 앞에 발표한 프로젝트입니다.

2024년 5월 한국 봉화의 '화산 이씨' 마을에 방문한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도 "대하드라마감이다. 전세계에 알리자"고 공감을 해주었습니다. 여기에다 리왕조의 고향인 베트남 박닌성에 공장을 둔 삼성전자도 관심을 보였다. 배급사도 롯데시네마도 호응을 해주었습니다.

이 대사는 “시조는 베트남 리왕조(이조)의 개국황제인 이태조 이공온이며, 중시조는 이용상입니다. 6대 황제 영종 이천조의 일곱 번째 아들”이라고 소개했습니다.

7대 왕이 후사가 없고, 공주가 8대왕이 올랐지만 사위인 전씨 일족이 6대 왕조 혈족을 살육이 시작했습니다. 이용상 왕자도 중국으로 망명길을 떠났다가, 뜻밖의 풍랑을 만나 표류한 곳이 현재 황해도 옹진현 창진도였습니다.

고려 고종은 대월국의 왕자를 기꺼이 받아들였고, 고려인과 결혼한 이용상 왕자는 슬하에 두 명의 아들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고려 고종 때 망명한 이용상 왕자는 몽골이 고려에 침입하자 군사 지략으로 큰 공을 세워 화산군으로 봉해졌습니다. 사극 '거란고려전쟁'에서 나올 정도로 할약을 했으며, ‘화산 이씨’의 탄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왕자는 평생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해 ‘월성암’이라는 바위에 올라 통곡하곤 했다고 합니다. 돌아보면 1000여년 세월이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용상 왕자의 염원은 1992년 한국과 베트남 재수교가 되어 이뤄졌습니다.

이 대사는 “할아버지는 왕족의 몸으로 타국에서 여생을 보내며 ‘먼 훗날 나의 후손이 나를 대신하여 꿈에도 그리는 조국을 찾으라’고 염원을 남겼습니다. 이용상 왕자의 염원은 저를 통해 769년만에 귀향해 이뤄졌다. 소중한 1000년 인연은 한국과 베트남의 미래를 여는 귀중한 열쇠가 될 것”이고 말했습니다.

그는 "화산 이씨 26대 왕손으로서 할아버지 이야기는 1995년부터 꼭 영화로 만들고 싶은, 베트남 민족의 잠재성을 자극해주고 자존심을 갖게 해준 이야기"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대사가 ‘화산이씨’ 시조인 이용상 왕자 얘기를 들은 것은 1967년 10살 때였습니다. 한국일보 등 한국 신문에 후손을 다룬 기사를 보고나서였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잘 몰랐지만 성장하면서 큰 아버지와 아버지에게 틈틈이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그의 나이 32세였던 1992년 12월 22일 한국과 베트남 재수교를 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이용상 왕자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심장은 쿵쾅거리면서’ 고국(베트남)을 찾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응우옌 푸 빈 초대 주한 베트남대사를 만났고, 베트남 대사 역시 한국 부임하면 이 왕조 후손을 만나고 싶어했었습니다. 그는 “주위에서는 말렸다. 종손이었던 작은 아버지의 한베문화교류협회-한월친선협회 등 활동 자료를 가져가니 깜짝 놀랐다. 물론 대사님이 알고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응우옌 푸 빈 대사는 베트남의 유명한 역사학자를 소개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리왕조 8대 선왕이 모신 박닌 등을 비롯한 덴도 사원을 방문을 하게 되며, 800년만의 귀환이었다. 그는 영정 앞에 무릎을 꿇고 정성스레 제사를 올렸습니다.

사원 관리자와 종친 어른들은 “먼 훗날 숲이 잘려나가고 따오께강이 마르면 리왕조의 후손이 돌아온다”는 전설을 들려주며 놀라워했다고 합니다.

이 대사는 리왕조 사원 방문 자리에서 “혈통의 근원에 대한 그리움을 품은 마음으로 이곳을 찾아와서 당신들의 영전 앞에 기쁜 마음으로 참배를 올립니다”(1994. 11.25)라고 뭉클한 감정을 글로 기록했습니다. 이 방문록은 사원에 그대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그 무렵 식민지 시절 프랑스와 투쟁할 때 사라졌던 리왕조 향로가 발견되는 기이한 일도 벌어지는 일도 있었는데, 후손이 돌아오자 사라졌던 향로가 발견되었다고, 하늘에서 도와주고 있다는 듯이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후 화산이씨 종친회에서 1995년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도무오이 당서기장을 비롯한 베트남의 지도급 인사들이 이들을 환대했으며, 베트남인과 동등한 법적 대우 및 왕손 인정 등의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베트남 정부 “화산 이씨는 ‘가장 오래된 해외동포’”...이용상 왕자의 일대기 오페라도

베트남 정부는 해마다 리 왕조가 출범한 음력 3월 15일이면, 종친회장을 비롯한 종친회 간부들을 기념식에 초청하여 행사를 진행한합니다. 2002년 12월 베트남의 하노이 오페라 극장에서 화산이씨의 시조가 된 이용상 왕자의 일대기를 공연했습니다.

이창근 대사는 2010년 베트남 정부로부터 시민권을 획득했습니다. 베트남 정부는 화산 이씨를 ‘가장 오래된 해외동포’로 칭합니다. 서울에 태어난 이 대사는 아이들이 어렸을 적 하노이로 갔었고, 큰 딸은 미국에서 치과의사가 되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베트남에서 대학을 마치고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투자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를 전공한 막내 아들도 대학을 졸업해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이 대사는 “두 아들이 모두 베트남 국적이지만 한국 군대를 보냈습니다. 두 아들은 베트남에서만 자라서 한국을 너무 몰랐다고 합니다. 논산훈련소를 가면서 시골길을 걸으면서 ‘살아돌아올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말할 정도였다"고 소개하며 웃었습니다.

꿈에서도 그리워한 ‘이용상 왕자’의 귀환의 염원을 이뤄낸 이후 이 대사는 베트남에서 여러 분야에서 ‘민간사절’로 맹활약했으며, 이제는 한국과 베트남을 역사적-혈연적 관계로 업그레이드해주고 있습니다.

769년만에 조상의 땅 베트남 귀향하고 25년만에 주한 베트남 관광대사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화산이씨 왕족 이창근 대사. 그는 이제 1000년 전 맺은 할아버지 이용상 왕자의 '인연'과 염원으로 한국과 베트남의 미래를 푸는 새로운 '키맨'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베트남과 인연을 맺은 것이 2010년 이고, 그 당시 출장지는 사업파트너 베트남 공안부 경찰총국이 있던 하노이였습니다. 마침 2010년은 하노이 천년 수도 기념으로 하노이가 온통 축제였고, 한국 뉴스와 베트남 현지 뉴스를 통해서 화산 이씨에 대한 이야기와 베트남 정부에서 화산 이씨 후손들을 공식 초청해서 정중하게 대한 기사를 본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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